첫 번째 AD Style - Excellence, 즐거움이 만든 ‘탁월함’

하성진 대표는 지금도 잠을 설친다. 400명도 벅차게 여겼던 원생들은 꾸준히 늘어 1,000명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건 그가 간절히 바라던 학원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종종 한숨을 쉬며 가장 행복했던 때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추억들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좋은 수학 문제를 찾아 헤매던 기억들이다. 그는 5대양 6대주의 수학 관련 사이트를 돌며 다양한 수학 문제를 찾아다니곤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방 안에 틀어박혀 기발하고 수준 높은 문제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을 만나면 마치 심마니가 삼 뿌리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곤 했다. 그건 본능에 가까웠다. 누군가가 자동차에 열광하고, 다른 어떤 이들에 스포츠와 영화에 열광하는 것처럼 그는 수학을 좋아했다. 풀이 과정을 즐겼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들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가장 큰 삶의 기쁨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열매는 주머니 속에 머물지 않았다. 송곳처럼 삐져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아드 폰테스가 수 년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용감한 장수 밑에서 비겁한 군사가 나올리 없다. 아이들은 밤새 선생님이 찾아낸 탁월한 문제들을 아낌없이 즐겼다. 상위 1%의 수학 영재들은 그렇게 수학을 좋아하는 선생님 아래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문제는 이곳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었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원생을 받아 수익을 추구해야 할 원장이 수학 문제에 빠져 있으니 성장은 한없이 더뎠다. 어떤 달은 일반 직장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학원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성진 원장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좋은 수학 문제를 넘어 좋은 강사를 뽑는데 또 한 번 힘을 쏟았다. 서울 곳곳의 수학 강사들이 그의 특강을 듣기 위해 아드 폰테스를 찾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기한 문제와 풀이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드 폰테스에서 스터디를 한 후에 자신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지금의 아드 폰테스를 만든 탁월함의 세 개의 기둥 중 하나는 바로 ‘즐거움’이다. 아드 폰테스는 그 시작부터 상위 1%의 수학 영재를 위한 학원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수많은 수학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 탁월함에 이르는 과정은 다름아닌 즐거움이었다. 아드 폰테스에는 좋은 문제를 즐기는 원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좋은 문제를 먹이는 즐거움을 아는 선생님이었다. 이런 욕심은 좋은 강사를 알아보는 안목과 투자로 이어졌다. 지금도 아드 폰테스의 강사들은 테스트를 거쳐야 학원에 합류할 수 있다.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혹독한 내부 스터디를 감당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적응하고 심지어 즐기는 강사들만이 살아남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 아드 폰테스는 초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보통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새로운 문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수학 문제와 달리 정답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아드 폰테스의 하성진 원장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성숙을 위해서, 경쟁의 도구가 아닌 논리적 문제 해결의 즐거움을 전하는 진짜 수학을 가르치기 위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