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Deep Interview - 하성진 대표

Q. 개원 후 초기에는 학원 운영이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대형 학원에 비해 KMO나 수학 올림피아드 등에서의 입상 실적은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모이지 않는 거에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하루는 4명이 함께 공부하는 반에서 한 학생이 다른 친구에게 뭐라 하고 있는 겁니다. 궁금해서 알아보니 다른 친구에게 이 학원을 소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알려줬는데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따지고 있었던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일견 흐뭇한 일화지만 그때는 너무 속상하고 서운하더군요. 그런데 개원 초기엔 이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학부모가 학원을 다니고 있던 다른 남매 학생을 발견하곤 언제부터 학원을 다녔는지 묻더군요.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그 아이들이 그냥 과외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 학원을 다니고 있었던 거에요. 그 때 그 엄마의 표정이 친구끼리 너무하네, 뭐 그런 표정 같았어요. 자기 아이만 우리 학원에 보내고 싶어서 친구에게조차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학원이 잘 될리가 있겠어요? 그래서 첫 5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Q. 학원을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그때만 해도 그 흔한 블로그 조차 할 생각을 못했어요. 달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2011년도에는 책을 썼어요. 카페를 만들어서 수학에 관한 칼럼을 써서 올렸는데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자고 연락이 오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학원에 테스트를 받으려고 오셨어요.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으니 카이스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어머니들이 목동의 영도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아드 머…’라고 하는 학원을 추천하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길로 목동으로 와서 일일이 간판을 확인하고 우리 학원을 찾아오신 겁니다. 그 학생은 결국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개원 초기에는 이런 일들이 정말 많았어요.



Q. 학부모들이 만족하면 당연히 홍보도 될 줄 알았는데 뜻밖이네요.


좋은게 있으면 나누고 싶기도 하지만 나만 알고 싶은 마음도 있잖아요. 우리나라 입시가 치열하다보니 잠재적인 경쟁자를 키우고 싶지 않은 본능도 있었을거라고 봐요.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이런 일화들이 쌓이다보니 어떤 이들에겐 오히려 우리 학원이 매력적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행이 2013년도에 학원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Q. 원장님 얘기를 듣다보면 수학을 그 자체로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 강의와 글쓰기에요. 수업이 없을 때는 인터넷으로 5대양 6대주를 돌며 좋은 수학 문제를 찾아다녔어요. 사실 우리 학원은 우수한 학생들이 적지 않은데도 이렇게 발견한 수학 문제를 내면 다들 놀라더군요. 많은 문제를 풀어봤지만 이런 문제는 처음 봤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직접 찾아서 번역한 문제라고 하면 아이들이 놀렸습니다. 그래서 번역이 시원찮다나요. (웃음) 그래서 제가 말했죠. 수학 선생님이 이 정도로 번역하면 잘한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주로 미국이나 영국, 독일에서 좋은 문제들을 찾아내곤 해요. 수학 올림피아드 같은 데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이렇게 전 세계의 수학 문제들을 찾아다니면서 나름의 유행이나 경향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시간 투자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 일을 즐기면서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오면 늘 하던 일이 좋은 수학 문제 찾기였으니까요. 그렇게 재미있는 일은 세상에 다시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Q.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웃음)


마치 집들이할 때 맛있는 요리를 해서 대접이나 기쁨이나 설렘,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문제를 만나면 우리 반 학생들에게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제가 발견한 문제들을 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자신은 안먹어도 배가 부른 엄마들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제대로 해결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은 거에요. 이럴 땐 정말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Q. 대표님은 목동 엄마들에게 쪽집게 선생님으로 통합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하루는 어떤 학부모가 저를 찾아와서 자기 아이가 KMO나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할 만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왜 그런 부탁을 하냐고 물었더니 이미 목동 엄마들 사이에 될 애와 안될 애를 구분해주는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사실 일반 학원은 저처럼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요. 그럴만한 안목도 없지만 학원비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아이들을 다 받아주니까요. 하지만 저는 학부모들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리곤 했어요. 당시엔 서운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그게 학생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Q.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의 실력을 판단하고 구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될 법한 학생들에게는 세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째 제가 가르치는 걸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속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한 번 가르친 걸 이해하는 기억력이 있죠. 마지막으로 힘든 과정을 극복하는 인내력이 있어요. 사실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에게나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대략 5, 6개월 정도면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2007년 부터 약 10년 간 KMO나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거 바로 이렇게 될 법한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 때문인지 아드 폰테스는 상위 1%의 학생들을 위한 학원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학원을 시작하면서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제겐 그게 상위권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더라구요. 목동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 몇 명만 가르치겠다는게 제 처음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구요. 그런데 만일 그런 제 선택을 계속해서 고집했다면 학원은 망했을 거에요. 하루는 저와 8년 이상 같이 일한 부원장님이 이렇게 묻더군요. 자기가 보기엔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도 우수한 애들에 왜 이런 아이들은 안 가르치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죠. 그런 아이들을 잘 가르칠 자신이 없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언제까지 다른 선생님들이 원장님을 보조하는 일만 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나름 자기 영역에서 베테랑이니 자사고나 특목고를 위한 반도 개설해달라는 거였어요. 일리가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학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부 오픈도 같은 이유로 내린 결정이었구요. 만일 제가 그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집대로 학원을 운영했다면 지금의 아드 폰테스는 없었을 거에요. 지금은 KMO나 수학 올림피아드를 목표로 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거든요.





Q. 아드 폰테스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거군요.


사실 수학 실력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건 또 다른 일이더군요. 처음엔 대치동에서 학원 경력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 학원이 어려워져서 목동으로 옮겨왔어요. 그런데 웬걸, 첫 달부터 대치동에서 수업할 때보다 월급이 더 많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다른 학원에서 일하다 1년 후에 지금의 학원을 오픈했어요. 그때만 해도 혼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9월에서 11월까지는 학원으로 치면 보릿 고개라고 할 수 있어요. 학생들이 나가기만 하고 새로 들어오진 않으니까요. 그 기간 동안 쉬었다가 겨울 방학이 되어야 다시 돌아오거든요. 학원이 나의 실력만으로는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때였습니다.


Q. 아드 폰테스가 다른 학원에 비해 성장이 빨랐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학생들의 내신을 관리하는 일보다 최고의 수학 실력을 가진 학생을 키우는데 집중했어요. 당시만 해도 저는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를 싫어했습니다. 점수로만 학생을 판단하는 건 잘못된 거라 생각했어요. 실력이 바로 점수로 환산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수학에 재능이 없는 아이들이 오면 학부모들에게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당시엔 상처가 되고 받아들이기 힘드셨겠지만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실력이 안되는 데도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받아주는 학원들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뒤로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와이프도 그렇게 사는 저를 응원해주었구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은 계속 성장 가도를 달렸다는게 놀랍습니다.


원생이 300명을 갓 넘길 때였어요.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300명을 감당할 그릇이나 역량이 안되는데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다 500명을 넘어서니 소화도 안되고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늘었는데 어떻게 학원 초기의 학습의 질을 유지할 지가 너무 너무 고민이 되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큰 학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학원의 성장이 꼭 저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앞으로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맨파워가 어떤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 학원 선생님들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아드 폰테스는 학원 선생님들을 엄선해서 뽑기로 유명합니다.


면접과 시강은 다른 학원들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원은 선생님들을 테스트하는 시험을 치룹니다. 어떤 선생님은 우리 학원에 오신 후 1년 동안 죽을만큼 힘들었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심지어 학생 시절보다 더 많이 공부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야말로 죽어라 공부해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니까요. 사실 다른 학원들도 좋은 선생님을 뽑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을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냥 알아서 열심해 해주세요, 하고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학원과 수업의 질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선생님들 간의 편차가 생기기 시작하고 학원 전체의 평가는 나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드 폰테스는 선생님 개인의 역량 만큼이나 우리 학원의 가르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종의 표준화 작업인 셈이에요. 어떤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도, 어떤 학생이 그 수업을 들어도 일정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Q. 어떤 방법으로 그게 가능한 거죠?


일부 다른 학원들은 20명의 성공을 위해 나머지 80명은 도태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학원을 홍보할 때도 성공한 20명만 보여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학원은 나머지 80명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요. 그 아이들의 실력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일부 학부모들이 아드 폰테스의 진도가 느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학생 하나하나가 완벽히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 때까지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으니까요.


Q. 아드 폰테스만의 어떤 고집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업에 한 번 실패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로또를 사볼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당첨이 될까봐 두렵거든요. 만일 복권이 당첨되어 큰 돈이 생기면 열심히 사는 삶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에요. 제겐 제 나름의 삶의 분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족하는 삶, 감사하는 삶을 사는게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학원 운영 역시 마찬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대표님만의, 혹은 아드 폰테스만의 모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꿈은 언제나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강사 모두에게 사랑 받는 학원을 만드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강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사기가 떨어지면 지금과 같은 학원의 평판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강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그 유익은 다름아닌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학원 운영 초기부터 저는 강사 욕심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학원이 적자인데도 선생님을 계속 채용하는 일도 있었어요. 원생이 100명 남짓일 때는 학원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도 도무지 수익이 나지 않는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일종의 수업료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학원이 힘들어도 마음에 드는 선생님은 무조건 채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다른 학원의 선생님들조차 우리 학원을 추천하는 일이 생기더군요. 지금도 저희 학원엔 선생님들 자녀가 많습니다. 우리 학원의 모토는 정직과 성실, 탁월함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묵묵히 꿋꿋하게 걸어오다보니 알아주는 분이 생기더군요. 그게 지금의 아드 폰테스를 만들었다고 확신합니다.